옛 동네 어느 새 변해버리고 우리도 딱 그만큼 변해버렸지만 - 비트겐슈타인 Friends 가사 中
나는 95년까지 강동구 길동에서 살다가 일산이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이사해
96년부터 일산에서 살고 있다. 지금까지 쭉.
지금이야 핸드폰에 메신저에 별 게 다 있지만 그 때야 뭐 그랬나.
삐삐가 있긴 했지만 어린 내가 쓸 물건은 아니었고.
핸드폰? 있기야 있었지. 벽돌같이 크고 더럽게 비싼 걸로.
당연히 이것도 내겐 해당 사항 없었다.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얼마간 우편으로 소식을 주고 받았지만
머지 않아 그것도 끊기게 되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뻔하지만 진리인 이야기.
그렇게 길동은 내게서 멀어져만 갔다.
14년 후 2010년.
여의도로 향해 당시 서류합격을 했던 N모 기업의 인적성 검사를 치른 후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려는데 같은 5호선에 길동역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즉흥적으로 길동으로 향했다.
갑자기 왜 그랬나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심적으로 지쳐있었고,
뭔가 위로가 필요했던 상태였던 것 같다.
나름 공부해서 소위 명문대 딱지가 붙은 대학에 들어가
그 안에서 열심히 해서 국가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지금은 국가장학금이 뭔가 보편적으로 받을 수 있게 바뀐 것 같던데,
라떼는(...) 성적 우수자에게 돌아갔었다.
뭐 어쨌거나, 당시에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취업에 필요한 각종 절차와 스펙들이었다.
어려워서? 아니. 매번 장학금 받고 다닐 정도로 학점 유지하는 게 훨씬 힘들었다.
그에 비하면 당시 취업에 필요한 스펙 나부랭이들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참 싫더라. 이게 다 뭔 의미가 있나 싶고.
단적으로 토익 점수 잘 받는다고 영어 잘 하는 건 아닌데 취업에는 필요한 상황이 너무 싫었다.
거의 소설 작가가 되어야 하는 자기 소개서 작성도 넌더리가 났고.
초등부터 대학까지 일련의 교육과정을 견뎌낸 말로가
고작 이런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극도의 허무감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황.
이에 심적으로 무척 지쳐있었고, 옛 동네를 돌아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었던 것 같다.
길동역에 도착. 예전에 살던 집으로 가보니 흔적도 없이 재개발 되어 아파트가 들어서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2002년에 재개발에 착수했었더군.
뭔가 돌아갈 곳을 잃은 듯한 상실감이 진하게 느껴졌지만,
아직 옛 흔적을 지니고 있던 주변 풍경이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예전에 다녔던 이발소, 슈퍼, 문방구 부터 학교, 성당 등.
나는 그 날 늦은 밤까지 열심히 옛 추억을 찾아 다녔다.
하도 걸어다녀서인지 다음 날 자고 일어나보니 다리에 핏줄이 다 터져 거무죽죽해졌더군.
혹시 길에서 옛 친구를 마주치는 이벤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는데 딱히 그런 건 없더라.
아니, 어쩌면 서로 알아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꽤 있었겠지 싶다.
재미있던 건 내가 8차선 도로 쯤으로 기억하고 있던 '큰 길'이
사실 알고보니 꽤 좁게 빠진 4차선이었고,
그렇게 드넓게 보였던 골목길도 다시 보니 그야말로 '골목'길이더군.
이래저래 많이 변하긴 했어도 그 길의 너비는 그대로였는데 말이다.
내 몸이 커져서 작게 보이는 건지, 욕심이 커져버린 건지. 아마 둘 다겠지. 거 참.
시간이 더 지나고, 2018년인지 19년인지 확실치 않지만
오랜만에 다시 한 번 방문한 길동은 더욱 더 많이 변해버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8~9년이 더 지났으니 변화는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서도.
이미 예전에 헐려버린 예전 집이야 그렇다 치고,
내가 기초공사하는 것 부터 봤던 '새 건물'도 헐리고 다른 게 들어섰더군.
그 당시에나 새 건물이지, 2018~19 기준으로는 30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건물이니 뭐.
그런 게 꽤 여러 군데 있었고, 그만큼 내 추억은 더 날라가버렸다.
2010년에 방문했을 때는 추억을 곱씹을 수 있었는데 이 때는 그게 잘 안 되더군.
내게 익숙한, 아니 익숙했던 곳임에도 전혀 낯선 곳에 있는 듯한
겉도는 기분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났다.
사실 변화야 당연한 수순이고, 이를 아쉬워하는 건 욕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게 되던가. 된다고? 너 T야?
긴 세월에 길동이 많이 변해버린 것처럼,
나도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그만큼 변했고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그래도 늘 마음 한켠엔 예전 길동의 모습,
골목을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이.
추석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길동에서 추석을 보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 써본 글.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 시절의 향수에 대한.
'배說'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심이 (1) | 2024.10.19 |
---|---|
가끔은 무인도에 가고 싶다 (0) | 2024.09.22 |
한 발짝. (0) | 2024.07.24 |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0) | 2024.06.18 |
먹고사니즘 (0) | 2024.05.27 |